‘국민프로듀서’라며 유료투표 독려하더니…“대국민 사기 방송이었나”


“국민프로듀서님을 기다립니다. 지금 당신의 소년(소녀)에게 투표하세요.”

지난 2016년 엠넷을 통해 방영된 ‘프로듀스 101’의 캐치프레이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국민프로듀서’라는 콘셉트를 가미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종 11명은 아이돌 그룹 I.O.I로 데뷔해서 한 해 동안 24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웠다. 이후 비슷한 콘셉트로 ‘프로듀스 101 시즌2’, ‘프로듀스 48’, ‘프로듀스 X 101’, ‘아이돌학교’, ‘소년24’ 등이 연이어 제작됐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엠넷 모회사인 CJ ENM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등극했다.

그런데 프로듀스 X 101 종영 후 투표조작 논란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시청자들이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해 제작진 등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무엇보다 시청자의 투표가 핵심인 프로그램에서 기만적인 투표조작 행위가 있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프로듀스 시리즈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의 뒤에는 ‘문화계 공룡’으로 성장한 CJ ENM이 있다. CJ ENM은 케이블 방송과 드라마, 예능 및 음악방송 기획, 제작과 각종 엔터사업을 영위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뉴스채널만 없다뿐이지 영향력은 지상파 3사와 비견될 정도다. 중소연예기획사와 아이돌 연습생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갑’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 조작 논란으로 CJ ENM은 바닥에 떨어진 신뢰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연이은 출연자 ‘충격 폭로’…경찰, 투표 조작 수사 확대
문화계 공룡에서 깡패로…돈‧권력 눈멀어 시청자도 기만

지난 15일 방영된 MBC의 ‘PD수첩’은 CJ ENM 계열사인 엠넷의 오디션프로그램 ‘프로듀스X 101(이하 프듀X)’의 투표 조작 사건을 비롯해 유사한 오디션 프로그램과 관련된 여러 의혹과 폭로 내용을 다뤘다.  

 


투표 조작 의혹…“로또 아홉 번 연속 맞을 확률”

프듀X 투표 조작 의혹은 일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 내 1~20위 연습생들의 최종 득표수 사이에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제기된 의혹에 따르면 1위와 2위 표 차이는 2만9978표였다. 뿐만 아니라 3위와 4위, 6위와 7위, 7위와 8위, 10위와 11위의 표 차이도 정확히 2만9978표로 똑같았다.

또 연습생 20명 모두 7494.442에 특정 숫자를 곱하면 해당 득표수와 유사한 값이 도출된다. 예를 들어 1위 득표수인 133만4011표는 7494.442에 178를 곱한 수와 거의 같다. 이처럼 순위마다 계수가 정해져 있고, 그 계수에 상수인 7494.442를 곱하면 최종 득표수와 거의 일치하는 숫자가 나온다. 미리 순위에 따라 득표수 비율을 정해놓고 표를 배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이런 현상이 확률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에 최수영 아주대 수학과 교수는 “로또 아홉 번 연속으로 맞는 확률과 거의 비슷하다”며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못 박았다.

당초 엠넷은 조작 의혹을 부인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자 태도를 바꿔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했으나 사실관계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자사 제작진을 경찰에 신고했다.

엠넷의 수사 의뢰서를 받아든 경찰은 즉각 내사에 착수했다. CJ ENM 사무실과 문자투표 데이터 보관업체, 연예기획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됐고, PD 등 관련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다. 경찰은 투표 조작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보고 프듀 전 시즌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폭로된 ‘가짜 오디션’의 실체

그동안 시청자들 사이에 오디션 프로그램의 조작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한계 상 어느 정도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되는 것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단순한 개입 정도가 아니었다.

프듀 101과 아이돌학교에 연습생으로 참여한 이해인(25)씨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조작 의혹에 대해 폭로했다. 아이돌학교 초반에 나온 3000명 오디션 장면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본선에 진출한 연습생 대부분은 예선 오디션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시작부터 조작이었다. 방송에 출연한 41명의 연습생 중 3000명 오디션장에서 시험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3000명은 이용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투표 조작 의혹도 제기했다. 이 씨가 11등으로 탈락했을 때 득표 수는 2600여 표였다. 그런데 한 커뮤니티에서 이 씨를 찍었다고 인증한 투표 수만 5000표가 넘었다. 이 씨가 탈락할 당시에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투표 조작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묻힌 바 있다.

프듀X101에 출연한 연습생 A씨는 사전에 데뷔조가 정해져 있던 정황을 털어놨다. 그는 “센터 선발은 원래 연습생들이 뽑는다. 그런데 갑자기 투표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얘기해 다른 연습생이 센터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기존 방식을 바꿔가면서 내정자를 센터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프듀X101 제작진도 조작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한 제작진 B씨는 “누구 집중적으로 찍어라. 어떤 모습으로 찍어라 이렇게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다”며 “얘 분량 좀 늘리자, 얘 분량 좀 줄이자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며 당시 제작 분위기를 전했다.

CJ ENM-연예기획사 유착 의혹

현재 경찰은 CJ ENM과 연예기획사간 유착 의혹에 초점을 맞춰 수사하고 있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특정 연예기획사의 연습생을 내정자를 만들지 결정하고 제작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최근 압수수색 대상이었던 스타쉽 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프듀X에 출연한 한 연습생은 “처음부터 스타쉽 출신 연습생에 분량을 밀어줬다”며 “오죽하면 스타쉽 전용, 스타쉽 채널, 스타쉽듀스라고 연습생들끼리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스타쉽 소속 연습생 중 2명이 최종 11명에 들었다.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고 띄어주며 유료 투표(건당 백원)를 독려했지만, 사전에 내정자가 있었다면 이는 사기 방송과 다름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조작 논란은 CJ ENM의 수직계열화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CJ ENM은 ‘문화계의 공룡’이라 불릴 만큼 음악 기획부터 프로그램 제작, 공연, 매니지먼트 등 관련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 특히 프듀 시리즈는 계열 방송사를 이용해 계열사에서 관리하는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고, 지속적인 노출로 홍보해 음반 유통과 공연 수익까지 극대화하고 있다.
다른 연예기획사들은 자사의 연습생을 출연시키는 것으로 CJ ENM이 구상한 큰 그림에 들러리라도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현재 CJ ENM은 가짜 오디션 논란에 대해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4일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인 ‘투 비 월드 클래스’를 첫 방영했다. 이전 오디션 프로그램의 조작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닌가. 이런 행보가 상식적이지는 않다

 

(사진제공=뉴시스, 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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