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고용하라는 대법원…‘꼼수 쓰는 도로공사’

▲ 지난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효자치안센터 앞에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에 따른 요금수납원 해고자 1500명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운전자를 반기던 요금수납원은 요즘 들어서는 보기 힘들어졌다. 하이패스 사용이 점차 일반화 되면서, 그만큼 요금수납원을 볼 일도 줄었다. 하이패스 이용률은 도입 10년째인 지난 2017년 이미 80%를 넘어섰다. 차량 번호판을 인식해 통행요금을 청구하는 ‘스마트톨링’이 전면 도입되는 2023년 이후 부터는, 요금수납원은 사실상 ‘멸종 직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요금수납원은 진작부터 구조조정 대상 목록에 이름이 오른 상태다. 원래 도로공사 직접 고용이던 요금수납원은 2008년 민간위탁기업의 계약직으로 고용 형태가 바뀌었다. 매년 재계약을 반복해야 하는 고용 불안이 뒤따랐다.

이를 견디다 못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법원에 ‘우리는 도로공사 노동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2013년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6년의 만에 법원은 요금수납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도로공사에 이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러고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자회사 등 꼼수를 동원해 직접 고용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에 요금수납원들이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하면서 사태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팩트인뉴스>는 공기업과 노조가 극한 대립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고용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고공농성 이은 본사 점거농성…“전원 직접 고용”
확고부동한 이강래 사장…대법 판결 무시하나?

대법원 민사2부는 지난달 29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68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도로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요금수납원들이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6년만의 일이다. 

투쟁나선 요금수납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과거 공사 소속이었다. 고속도로를 운영‧관리하는 도로공사 입장에서 요금수납은 핵심적인 업무였고, 직접 고용은 당연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이른바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2008년 모든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가 외주화됐다. 

요금수납원들의 신분은 모두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길게는 1년, 짧게는 한 달 반 마다 재계약을 해야 했다. 계약 연장 여부는 오로지 용역업체 사장과 현장소장의 마음에 달렸다. 사장과 소장은 대부분 도로공사 임원 출신이었다. 

고용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자연스레 부당한 요구와 갑질이 뒤 따랐다. 3교대 근무 후 텃밭 가꾸기와 화장실 청소 등 무급 노동이 일상이 됐다. 

결국 500여명의 수납원들은 2013년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여전히 도로공사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요금 수납 업무를 하고 있으니 소속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1, 2심 법원은 각각 2015년과 2017년 요금수납원들이 도로공사 직원이라 판단했다.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도로공사의 관리감독 아래 있었기 때문에 파견법 위반이라고 본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도로공사와 용역업체가 맺은 계약을 보면, 수납업무 등 공사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요금수납원에게 맡겼다. 또 노동자들은 수납뿐 아니라 각종 단속 업무 등 공사가 지시하는 업무를 수행했다”며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명령했다. 

꼼수 쓰는 도로공사

하지만 도로공사는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고, 대법원 최종 판결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고용정책 기조가 바뀌었지만, 도로공사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도로공사는 지난 7월 1일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해 수납원들의 자회사 전환을 추진했다. 고속도로 통행료 수납업무를 전담하는 회사였다.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이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에 다름없다고 주장했지만, 어디를 봐도 용역업체를 하나로 통합한 꼼수에 불과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둔 수납원들은 자회사 전환에 반대했지만 막상 자회사 설립이 현실이 되자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전체 6500여명의 요금수납원 중 4000여명이 자회사로 전환했고, 1500여명은 자회사 전환을 거부했다. 7월 1일 전국 톨게이트 영업소를 자회사로 전환함에 따라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요금수납원의 계약은 자동만료되며 일시에 해고됐다. 공사가 자회사 설립을 빌미로 노동자를 대량해고한 셈이다. 

도로공사의 꼼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후 원심 판결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도로공사는 직접고용의 수를 줄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우선 대법원 확정판결로 직접고용해야 하는 인원을 소송당사자들로 한정했다. 즉, 직접고용을 주장하다 해고된 1500여명을 전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당사자에 대해서만 직접 고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로 근로자 지위가 회복된 수납원은 총 745명이다. 이 가운데 220명은 이미 자회사 전환에 동의했고, 정년을 넘긴 수납원 20명과 대법에 파기환송된 수납원 6명을 빼면 499명만 남게 된다. 도로공사는 이들에 대해서도 기존 요금수납이 아닌 환경 정비 등 조무 업무를 부여하기로 했다. 

도로공사는 앞서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수납원들에게 ‘소송에서 노조 측이 승소하더라도 직접 고용으로 가지 않고 자회사에 잔류하겠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아 후환을 없애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침에 따른 것으로 절차 상 문제가 없다”면서 “공기업의 정규직 전환은 자회사를 통한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모기업의 상황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라 자회사 설립이 취소되는 등 고용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노-노갈등 번지나

대량해고 사태 이후 톨게이트 등에서 농성 중이던 요금수납원들은 이강래 사장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 사장면담을 요구하며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항의방문 했고, 그 자리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본사 점거농성이 27일 기준으로 19일째를 맞았다.

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라가는 고공농성도 마찬가지겠지만, 본사 점거농성은 그 자체로 최후의 수단이다. 소위 강경 투쟁이 되면서 이목이 쏠리고 잡음도 생긴다. 요금수납원들은 본사를 점거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도로공사 정규직 직원과 충돌했다. 당시 요금수납원의 점거가 시작될 때 농성을 막기 위해 도로공사 직원 수백명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 다수의 부상자와 연행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이 소속된 민주노총은 “도로공사는 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경찰력과 ‘구사대(노조파괴조직)’를 동원한 협박을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한국노총 소속인 도로공사 노조도 지난 23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노조는 성명서에서 “본사 침탈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도로공사는 무법천지의 상황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폭력, 모욕적 비방과 욕설에 우리는 분노했다”며 요금수납원들의 본사 점거 농성에 유감을 표하고, 철수를 요구했다. 이날 본사 건물에는 “너무 힘들어요! 동료가 될 우리! 농성은 이제 그만!”이라고 쓴 현수막이 내걸렸다. 

자회사로 소속을 옮긴 요금수납원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고 요금수납원의 업무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서 업무가 가중됐기 때문이다. 사측은 800여명의 기간제 계약직을 투입했지만, 기존 3교대 근무를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새 노조는 지난 18일 “정상적인 4조3교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파업 인원을 즉각 충원해달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공사 측에 전달했다. 해고자들의 농성이 장기화되면 수납원 노노간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 

도로공사는 이 와중에 직접고용 인원에 대해 직무교육을 강행해 노동자간 갈등을 키웠다. 도로공사는 지난 23일부터 직접고용 인원 423명에 대해 직무교육에 들어갔다. 이중 교육을 거부한 47명을 포함해 90여명이 교육에 불참했다. 교육 참석자 대부분은 한국노총 소속이고, 교육 거부한 인원은 민주노총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된 노조에 따라 입장이 갈라진 것이다. 요금수납원들은 이것이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전형적인 ‘갈라치기’ 수법이라며 비판했다. 

교육에 불참한 47명은 “1500명 내부를 갈라치기 하기 위해 대법 판결자와 하급심 계류자를 분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공공기관의 만행”이라며 “도로공사가 이번 판결을 소송당사자만의 판결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사과나무에 배가 열렸을 수 있으니 다 검사해봐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망발”이라거 거세게 비판했다. 

빗나간 정부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정책

상황이 이런데 도로공사 관리 책임이 있는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본사 점거농성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대변인은 “하루속히 해소되기를 바란다”며 “원만히 타결될 수 있도록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판에 박힌 말을 늘어놓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청와대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12일 취임 첫 행보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엄포하며 공공부문 정규진 전환을 추진했다. 지난 2017년 7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침’을 발표하면서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업무는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로공사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침에 따른 1단계 전환 대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은 아무런 강제성도 없을뿐더러,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의 길을 열어둬 혼란을 가중 시켰다. 정부는 대안으로 자회사를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강래 사장이 수납요금원에게 자회사 전환을 종용하면서 똑같은 논리를 폈다. 자회사 전환이 도로공사의 직접고용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만, 기재부는 모든 공공기관 자회사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결국 정부는 공사를 위해 아무런 담보 없이 용역업체와 마찬가지인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의 길을 열어준 꼴이 됐다. 

기대감은 실망과 분노로

이강래 사장이 처음 도로공사에 취임할 때만 해도 수납원들의 기대가 컸다. 이강래 사장이 문재인 정부의 개국 공신이며 여당의 중진의원이자 원내대표 출신이니 정부의 달라진 고용 정책을 적극 반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큰 것도 자연스럽다. 실제로 이 사장은 취임 이후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강도 높은 자체 경영혁신과 함께 공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며 “소외된 이웃과 지역 사회를 따뜻하게 살피고,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등을 통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따뜻한 기업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라면, 대법원이 요금수납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마당에 자회사 설립을 취소하고 수납원을 직접고용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자회사는 자회사대로 설립해 수납업무를 외주화하고, 소송에 직접 참여한 인원은 다른 업무로 직접고용하겠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거스르는 일일 뿐더러,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완전히 거꾸로 가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노동단체인 국제노총(ITUC)은 지난 18일 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노동존중 정부’에 대한 환영 의사를 밝힌 이후 서한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섀런 버로우 ITUC 사무총장은 서한에서 “법원 판결의 불이행은 사법절차에 대한 접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한국도로공사가 법원판결을 무시한 채 노동자에 대한 형사고소와 경찰의 개입에 의존함으로써 공기업이 나쁜 선례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던 원래 업무에 직접고용되도록 노사 간의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와 관련부처가 도로공사와 한국 내 기업들이 법과 사법부의 판결을 예외 없이 준수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버로우 사무총장은 지난 2017년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문 대통령과 단독면담을 가지는 등 이번 정부의 노동 정책에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감은 2년 만에 우려와 항의로 바뀌었다. 왜 그런지는 수납원 노동자들은 잘 안다. 정부와 도로공사도 잘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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